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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필 붙들린 게 또 왜 왼손이었는지.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손은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게 힘을 놓치고 말았다. 효성진의 목소리가 수면에 부딪혀 끝내 들리지 않았다. 귀가 멍멍했다. 나 수영 못 하는데, 그 생각이 들었을 때는 이미 매캐한 물이 목을 콱 틀어막았다.

 

  내가 미쳤지, 그냥 효성진이 들어오게 냅둘걸.

 그러나 설양은 효성진의 하얀 옷이 싫었다. 수의처럼 허연 옷. 언제든 그대로 죽어 묻힐 사람처럼 미련 하나 때묻히지 않은 백의. 문득 머릿속에서 악몽처럼, 흐르지 못해 고인 물 위로 숨이 다한 새하얀 옷 한 벌이 둥둥 떠올랐다. 그 꼴만 생각해도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젠장, 설양은 생각했다. 지금은 상상 때문에 숨이 막힌 게 아닌 것 같은데. 숨, 막혀…….

 그 때였다. 수면 아래로 빛무리가 쏟아져 들어왔다. 컴컴한 시야로 환한 것이 번졌다.

다음 순간 설양이 본 것은 물 속에서 눈이 내리는 듯한 기묘한 광경이었다. 휘둘러지는 칼날을 따라 서리가 얼었다. 물을 찢으며 내려온 검끝은 설양의 등 뒤로 정확하게 내리꽂혔다. 동시에 설양은 속박이 풀려난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 자신을 강하게 끌어올렸다. 새카만 어둠 속, 한 손으로는 상화를 쥐고 다른 손으로는 자신을 끌어올리는, 효성진이 보였다.

 물 속에서, 모든 감각을 잃은 한 사람이,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손을 뻗는 장면은 인정하기 싫을 만큼 아름다웠다.

 설양은 맥이 탁 풀렸다. 호흡이 다한 몸에서 서서히 힘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효성진이 물 속에서 몸을 돌리자 길고 하늘거리는 옷자락이 더욱 느리게 펄럭였다. 다음 순간 효성진은 입을 맞추어 자신의 남은 모든 호흡을 부드럽고 또 급하게 건네었다.

 생의 거품이 입 안에서 보글거리며 끓었다. 효성진은 서둘러 수면을 향해 헤엄쳐 나갔다. 물이 아니라 수많은 호흡을 가르고 올라가는 것처럼, 느리고, 흐릿하고, 밝았다. 가물가물한 숨을 겨우 삼키며 설양은 그 뒷모습에 대고 생각했다.

 빛이 보이지도 않으면서, 저 자는 어찌 빛을 알고 나아가나.

 

   “뒤에서 기다렸으면 이리 젖을 일도 없었잖나.”

 

 땅바닥에 널부러진 채로 물과 날숨을 한번에 토해낸 설양이 처음 들은 말은 이것이었다. 한 점 달빛 없는 밤하늘은 수면 아래에서 보던 것처럼 캄캄했다. 그는 신선한 공기를 한껏 들이쉬며 쏘아붙였다.

 

   “아, 그래서 앞도 못 보고 손도 못 쓰는 상태로 호수에 뛰어들려고 하셨다?”

   “난 상화를 믿거든.”

 효성진의 대답에 설양은 입을 꾹 다물었다. 으, 자존심 상해. 간혹 영검이 주인의 의지보다 앞서서 적을 찾아낸다는 이야기는 들어 보았으나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물에 들어갔어도 위험할 일은 없었던 거잖아. 그러나 변명할 틈도 주지 않은 채 효성진이 웃음 섞인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대는 날 믿지 못했지만?”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설양은 지금 자신의 손에 없는 강재가 한껏 그리워졌다. 이게 무슨 추태야? 차라리 검을 제대로 들고가서 거미놈을 한방에 두 동강 내버렸어야 했는데. 걷어찰 이불도 없는 터라 설양은 누운 채로 애꿎은 입술만 꾹 짓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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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GM LIST -

[ MAIN ]

00:00 / 02:15

[ 2ftt ]

[ 멍개 ]

​[ 시레 ]

[ 하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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