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편 조금 떨어진 곳에서 효성진은 정체불명의 ‘그것’에게 두 손을 얌전히 내준 채 걷고 있었다.
효성진은 두 사람과 벽 너머로 떨어지자마자 곧바로 옅은 마기가 팔을 옭아매는 것을 느꼈다. 스멀스멀 팔목을 타고오른 그것은 두 손목을 붙잡더니 앞으로 모아 단단히 결박했다. 아무래도 이 호수의 거미는 자신을 최초의 제물로 지목한 모양이었다. 효성진은 ‘그것’이 이끄는 대로 천천히 발길을 옮겼다.
바람이 부드럽게 콧잔등을 쓸었다. 바람이 부는 방향을 가늠하니 호수로 점점 가까워지는 듯했다. 효성진은 나무뿌리에 발이 걸릴 때마다 휘청거렸다. 그는 상화가 부르르 떨리는 것을 일부러 무시하고 무력한 척 묵묵히 걸었다.
어젯밤 설양을 습격한 요괴와 같은 놈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수법만큼은 명백해 보였다. 호숫가 전체에 거미줄을 쳐 두고 일정 범위 안에 들어온 사냥감을 안쪽으로 유인한다. 경험상 이런 것들은 상대하기가 조금 까다로웠다. 이들은 거미, 즉 본신이 약하기 때문에 위협을 느낀 순간 곧바로 모습을 감춰 버린다. 완전히 소탕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오래, 잡아먹히기 직전까지 미끼가 되는 수밖에 없었다.
설양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었다. 정신머리 똑바로 박힌 사람이라면 제 발로 물귀신의 입에 걸어 들어가는 ‘멍청한’ 고생을 ‘사서’ 하지는 않을 거라고.
그러나 효성진은 정확히 그런 류의 사람이었다.
“제정신이야? 죽으려고 환장했어?”
설양이 힘주어 어깨를 잡아당겼을 때 효성진의 발목은 거의 물에 잠겨 있었다. 한 발짝만 더 가면 호수였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수면은 늪처럼 괴괴했다. 갑작스런 방해를 받은 효성진이 단호하게 말했다.
“뒤로 물러서.”
“아니, 그러니까 왜 들어가냐고!”
“저놈이 안으로 들어가면 기회가 없네!”
설양은 기가 찼다. 아니, 그러니까 댁이 왜? 굳이? 저게 안 튀어나오면 불을 지르든 호수를 퍼내든 해서 끌어내면 되지 대체 왜? 앞도 안 보이는 주제에 물에 뛰어들었다가 숨 막혀 뒤지면 어쩌려고, 어? 배려와 공경의 미덕을 갖추지 못한 설양치고는 제법 온건한 생각이었으나,
“……미쳤냐!”
정작 앞의 말들을 모두 잘라먹고 튀어나간 건 고작 이 한 마디였다. 설양은 말을 내뱉자마자 곧바로 후회했다. 내가 왜 효성진을 걱정하고 있지? 솔직히 나랑 까놓고 붙으면 얘가 나보다 셀 거 아니야?!
그러나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호수가 크게 요동쳤다. 뜻밖에 겁을 먹은 거미가 효성진을 내팽개치고 안으로 들어가 버리려고 하는 것 같았다. 갑작스럽게 결박이 풀리자 효성진은 중심을 잃고 뒤로 기울었다.
설양이 몸을 돌리려는 찰나였다. 갑자기 무언가 발목을 붙들었다. 젠장, 목표물을 바꿨군. 발로 밟아 쳐내려 했지만 이미 거미줄이 다리를 타고오른 뒤였다. 설양은 반사적으로 허리를 더듬어 강재를 찾았다.
아, 맞다.
갑자기 시야가 휙 뒤집히더니 몸이 차가운 물에 처박혔다. 설양은 본능적으로 손에 잡히는 것을 붙들었다. 어느 틈엔가 뻗어진 효성진의 손이 그의 몸을 아슬아슬하게 지탱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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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GM LIST -
[ MAIN ]
[ 2ftt ]
[ 멍개 ]
[ 시레 ]
[ 하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