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헛기침을 하며 슬쩍 뒤로 물러서자 설양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효성진이 꿰맨 닭의 상태를 보며 이상이 없음을 확인했다. 미리 한약재를 넣어놓은 솥에 준비해둔 닭을 조심스럽게 집어넣었다. 아궁이에 불을 떼고 열기로 인해 물이 끓어오름을 확인한 설양은 뚜껑을 닫았다. 설양은 부엌 한편에 우두커니 서서 자신을 기다리던 효성진에게 말을 건넸다.
"한 시간은 냅둬야하니 나가서 기다리자고. 저 닭들하고 같이 쪄죽을 생각은 아니겠지?"
"하하, 그럴 리가. 어서 가세."
효성진은 누가 잡아갈세라 서둘러 부엌을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설양은 쩝, 입맛을 다시며 효성진의 자취를 쫓아갔다.
"이 냄새는 분명... 분명...."
아천은 제 앞에서 풍겨오는 냄새에 얼굴을 묻고 코를 킁킁거렸다. 진짜 강아지같네, 설양은 속으로만 생각하고 용케 입 밖으로 내뱉는지는 않았다. 한참 동안 식탁 주위를 맴돌던 아천의 얼굴은, 냄새의 정체를 알아차린 것인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자신이 원하던 오리가 아니라는 실망감에 입술은 댓발 튀어나온 상태였다.
"얼씨구? 입이 이렇게 튀어나와서는, 오리가 따로없네."
"못된 놈! 장님이라고 오리를 닭이라고 속여? 눈이 없는 거지, 코가 없는줄 알아?!"
아천은 곡소리를 내며 자신의 처지를 통탄했다. 저 못된 놈이 불쌍한 장님을 속여 먹는다며 배신당한 척을 했지만, 사실 자신들의 형편으론 오리는 커녕 닭도 꽤 무리였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아쉬움에 어리광을 피웠던 것. 아천은 마음 넓은 자신이 이해해 주겠다는 특유의 표정을 지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 식탁 위를 더듬었다. 젓가락을 집어 들어 그릇에 담긴 닭을 휘적거리던 아천은, 눈이 보이는 걸 들킬세라 닭을 이상하게 찢어발겼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설양은 한숨을 쉬며 아천의 손에서 그릇을 빼앗아들었다. 달걀을 빼앗긴 닭처럼 비명을 지른 아천에 설양은 시끄럽다는 듯 아천의 이마를 가볍게 때렸다.
"눈도 안 보이면서 닭은 어떻게 먹으려고? 기다려, 살 발라줄 테니까."
설양의 말에 아천은 온 몸에 소름이 돋는걸 느꼈다. 저 놈이 미치지 않고서야 저런 친절을 베풀 리가 없었다.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할 터, 아천은 슬쩍 시선을 돌려 설양이 뺏어간 자신의 그릇을 살펴보았다. 초반에는 뼈와 살을 분리해 잘 발라주는 듯했으나 닭다리 두 개를 효성진과 설양 본인의 그릇에 하나씩 옮기는 게 아닌가? 아천은 순간 자신이 장님 행세를 하는 것도 까먹고 닭다리를 내놓으라며 소리를 지를 뻔했다. 애써 차오르는 분노를 삭히며 아천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입을 열었다.
03
- BGM LIST -
[ MAIN ]
[ 2ftt ]
[ 멍개 ]
[ 시레 ]
[ 하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