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효성진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서 풍겨오는 물비린내에 그만 어리둥절해진 아천은 크게 당황했다.
“엥, 저희 객잔에다가 오늘 밤에 바로 떠난다고 했는데요?”
아천이 발빠르게 객잔 주인에게 미리 인사를 해 둔 탓에 결국 세 사람은 노숙을 하는 신세가 되었다. 아천에게도 이유는 있었다. 마을의 골칫거리를 해결하고 나면 사람들이 거의 신당 하나라도 차릴 기세로 이름을 묻곤 했기 때문에, 효성진이 매번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다행히 구주에는 인적이 끊긴 폐가가 몇 채 있어, 그들은 몰래 숨어가는 나그네마냥 하룻밤을 묵고 가기로 결정했다.
설양은 나무상자를 끌어다 놓고 앉아 나뭇가지로 모닥불을 쿡쿡 찔렀다. 바로 건너편에는 효성진이 젖은 머리카락을 한쪽 어깨로 늘어뜨린 채 불을 쬐고 있었다.
“잠이 안 오나?”
“아직 축축해서 그래.”
“그러게 여분 옷을 좀 사 둘 걸 그랬네.”
돈도 없는 주제에 한다는 소리에 설양은 흥, 코웃음을 치고 말았다. 그러나 젖은 옷은 핑계일 뿐 사실 잠을 자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눈동자에는 연신 탁, 탁 튀어오르는 불꽃이 일렁거렸다.
“이게 무슨 신세야? 남들 좋은 일만 시켜주고.”
설양의 퉁명스러운 대꾸에도 효성진은 익숙한 듯 말을 받아넘겼다.
“어차피 대단히 생색 낼 일도 아니었잖나.”
“꼬맹이는?”
“잠들었어.”
설양은 효성진이 가리키는 대로 안쪽 방을 흘긋 돌아보았다. 아닌 척해도 오늘 일로 적잖이 놀랐는지, 긴장이 풀려 곧바로 곯아떨어진 모양이었다. 또 장난기가 발동한 설양이 목소리를 낮춰 짐짓 못된 짓을 꾸미는 것처럼 속삭였다.
“데리고 다니느라 귀찮지 않아? 그냥 쟤 두고 나랑 둘이 가자, 어때? 지금 출발하면 내일 아침에는 이미 저 산을 넘고 있을 거라고.”
그는 습관적으로 고개를 들어 효성진의 낯빛을 살폈다. 그러나 그 말이 또 뭐가 웃겼는지 효성진은 한껏 웃고 있었다. 뭐, 무슨 반응인데? 머쓱해진 설양이 급하게 고개를 돌리자 효성진이 느지막하게 대답했다.
“오늘 아주 훌륭했어.”
아, 그 소리였군. 설양은 김 빠진 사람처럼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모닥불 한복판에 던져넣었다.
“전부 그대가 가르쳐 준 덕분이네.”
효성진은 칭찬이 헤픈 사람이었다. 그리고 설양은 모든 말에서 뼈를 찾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딱히 대답해줄 말이 없어 입을 다물었을 뿐이었다. 효성진은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빗어내리며 조금 더 뜸을 들이다가 일어섰다. 좋은 꿈 꾸게. 설양이 대꾸했다. 잘 자.
누군가의 욕망처럼 벌름거리며 피어오르는 불꽃에 시선을 고정한 채 설양은 생각했다. 솔직히, 아주 솔직히 말해 이대로도 나쁘지 않다. 그러니 조금 더 미뤄둔 다음에 뭐든 결정해도 괜찮을 것만 같았다.
생각이 정리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설양은 자기도 모르게 콧노래를 부르다가 문득 뭔가 잊고 있었던 것을 떠올렸다. 맞아, 그 백설각 놈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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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GM LIST -
[ MAIN ]
[ 2ftt ]
[ 멍개 ]
[ 시레 ]
[ 하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