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찮은 내색을 보이던 점소이는 자신이 아는 것들을 대충 늘어놓았다. 홍진의 문제를 손쉽게 해결하고 다닌다는 세 사람, 특히 남자가 관심을 갖는 장님 백의도장에 대해 아는 대로 말해 주었다. 끝까지 진지하게 듣던 남자는 마지막에 구주로 향하는 방향을 물었다. 의아해하면서도 점소이는 기꺼이 길을 알려 주었다. 잠깐 부엌에 들어갔다 다시 나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탁자 위에는 식사 값을 조금 웃도는 엽전이 놓여 있었다.
정말 구주로 간다니 별일이네, 그곳에 가면 성한 사람도 미치광이가 되어 사라진다던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점소이는 뜻밖의 수입을 바지주머니에 냉큼 쑤셔넣었다. 원래 남 걱정은 오래 하지 않는 것이 오래 사는 지름길이었다.
자신이 가진 낡은 것 중에서 가장 값나가는 것들을 팔아 마련한 돈을 모두 답례로 내려놓은 뒤, 송람은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구주로 향했다.
그로부터 한참 떨어진 곳.
세간의 입에 자신들이 오르내린다는 사실도 모른 채, 마침 세 사람은 구주로 접어들고 있었다. 지름길을 택했으나 산세가 제법 험해 걷는 속도는 계속 느려졌다. 게다가 여름 날씨가 제법 더워 정오에 이르자 더는 걸음을 재촉할 수 없었다. 효성진이 잠시 물을 받으러 간 사이, 설양과 아천은 물가에서 멀지 않은 언덕에 털썩 주저앉았다.
“더워 죽겠네.”
설양은 얼굴 절반을 덮고 있던 면사를 떼어낸 뒤 구겨서 주머니에 넣었다. 아천이 그 말을 듣더니 냉큼 잔소리를 했다.
“아직 마을에서 멀리 안 왔어, 벌써 떼지 마!”
“야, 네가 한 번 해 볼래? 쪄죽겠다고.”
설양이 투덜거렸다. 말은 이렇게 해도 얼굴을 가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방금 그들은 오는 길에 난릉 금씨의 세력권을 가로질렀던 것이다.
절색의 미인이나 해야 할 법한 면사가 왜 설양의 것이 되었느냐 하면 단순했다. 설양은 돌아다니면서 얼굴이 팔리고 싶지 않았고, 아천은 설양의 말투 때문에 쪽이 팔리고 싶지 않았다. 아천은 효성진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마다 설양이 한 마디씩 얹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려고 자꾸 설양의 발을 밟아 댔다. 결국 두 사람이 같은 날 같은 이유로 세 번쯤 싸웠을 때, 효성진은 기꺼이 가까운 매대에서 여인용 면사 값을 지불했다.
02
- BGM LIST -
[ MAIN ]
[ 2ftt ]
[ 멍개 ]
[ 시레 ]
[ 하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