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때 반대쪽에서 날카로운 반사광이 번뜩였다.
거의 동시에 설양은 강재를 뽑아들고 본능적으로 내리쳤다. 검날은 허공을 가르고 바닥에 박혔다. 이쪽이 아닌가? 어디서 반사된 빛이지? 설양은 재빠르게 몸을 돌렸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눈 한번 깜박일 만한 찰나, 그의 시야에 정체불명의 붉은 안광이 가득 찼다.
동시에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손등을 강하게 긁고 지나갔다. 설양은 반사적으로 질끈 눈을 감고 검을 휘둘렀다. 둔탁한 무언가가 날에 스쳐 휘청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눈앞에 아직도 붉은 것이 어른거리는 착각이 들었다. 잠깐 동안 시야에 담겼던 그것은 일반 사람보다 키가 한 뼘쯤 크고 머리에는 뿔이 달려 있었다.
각요(角妖)였다.
“……!”
‘그것’이랑 눈을 마주치면 미쳐 버린다고? 설양은 이제서야 가까운 객잔에서 들었던 괴소문을 떠올려 냈다. 미칠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붉은 빛 때문에 눈이 부셔서 똑바로 볼 수 없다면 이쪽이 불리한 것은 확실했다. 설양은 눈을 감은 채 감각에 의존해 다음 일격을 날렸다. 머리를 노린 공격은 어이없이 빗나갔다. 정체불명의 뿔 달린 요괴는 의기양양해져 달려들었다.
예상한 대로였다. 설양은 발을 들어 약삭빠르게 상대의 다리를 걸었다. 각요가 중심을 잃자마자 사선으로 그어진 강재가 가슴팍에 정통으로 상흔을 남겼다.
이때다 싶어 설양은 몸을 돌려 냅다 뛰었다. 얼마 달리지 않아 뒤쫓는 기척이 완전히 사라졌다. 종루에 묶여 성벽을 벗어나지 못하는 건가. 설양은 숨을 고르며 어울리지 않게도 실실 웃었다. 아까 아천에게 배운 수법을 그대로 써먹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꼬맹이, 쓸 만 하긴 했네.”
그 때, 뒤에서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있었나?”
익숙한 목소리에 낯선 감정이 실려 있었다. 설양은 반가움에 미처 화색을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몸을 완전히 돌리기도 전에 효성진이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그의 팔을 붙들었다.
보이지 않는 탓에 팔꿈치도 아니고 팔목도 아닌 어중간한 곳을 낚아챈 손에는 제법 힘이 들어가 있었다. 설양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되물었다.
“뭐야, 언제 왔어?”
“신호.”
효성진이 딱딱하게 대답했다.
“갑자기 끊겼잖나.”
뭐야, 지금 걱정이라도 했다는 거야? 설양은 속으로 생각했다. 하, 나 원. 나한테까지 그놈의 성인군자 노릇을 계속할 필요는 없는데. 그러나 뭐라고 대꾸하기도 전, 별안간 효성진에게 붙들린 왼손에서 불붙는 듯한 통증이 팔을 타고 밀려왔다. 설양이 씁 하고 숨을 삼켰다.
“……중독이군.”
독기를 감지한 효성진이 중얼거렸다. 설양이 고개를 내리자, 약지와 손등의 일부를 덮은 장갑 아래로 타들어간 듯 새빨갛게 달아오른 상처가 보였다. 독사가 이빨을 단단히 박아넣고 힘주어 긁어낸 듯한 흔적이었다. 설양은 반사적으로 손을 빼내려 했지만 효성진이 더욱 힘주어 잡았다. 자기 몸 다치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설양의 표정이 짜증스럽게 구겨졌다.
07
- BGM LIST -
[ MAIN ]
[ 2ftt ]
[ 멍개 ]
[ 시레 ]
[ 하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