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 날 새벽 날이 밝기가 무섭게 설양은 몰래 폐가를 빠져나왔다. 평소답지 않게 효성진과 아천이 깨지 않도록 문을 조심스레 닫은 뒤 그가 향한 곳은 어제 사람을 시켜 돈을 조금 쥐어주고 알아온 송람의 숙소였다.
그놈이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는지만 확인하고 돌아가 서둘러 출발하자. 아니, 이왕 푹 잠들어 있으면 더 푹 잠들 수 있게 숨이라도 끊어 줄까?
그랬던 생각은 설양이 어제 묵으려던 객잔 앞에서 검은 그림자를 발견하면서 산산조각났다. 설양은 본능적으로 몸을 숨기고 강재에 손을 뻗었다. 뭐야, 저 놈이 왜 저기 있어? 뭔가 눈치챘나? 그러나 송람은 객잔 주인과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 뒤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몸을 돌려 떠나갔다.
길 너머로 인기척이 사라지고 나자, 설양은 기척을 숨기고 객잔 주인의 등 뒤로 다가갔다.
“방금 저 놈이랑 무슨 얘기했어?”
“벼, 별 일 아니었습니다! 새하얀 옷 입은 도장을 찾는다길래 이, 이미 어젯밤에 떠났다고……. 자, 잘못했습니다!”
목에 칼을 들이밀자 객잔 주인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모든 것을 실토했다. 맞다, 여기 사람들은 우리가 떠난 줄 알고 있었지. 꼬맹이가 한 건 했네. 설양은 단번에 마음이 누그러져 단검을 품 속으로 돌려넣었다. 그러는 동안 객잔 주인은 별안간 실실 웃는 설양의 얼굴을 살폈다. 어슴푸레한 아침인지라 일찍 노안이 온 주인은 눈을 한껏 찌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제 혹시 그 도장이랑 같이 있던…….”
“야.”
말이 튀어나오기 무섭게 설양이 몸을 돌려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 눈빛은 면사로 얼굴 절반이 가려져 있을 때와 똑같이 살벌했다.
“사람 잘못 봤어. 응? 난 그렇게 좋은 놈 아냐. 그러니까 입 조심해. 알았어?”
“아, 알겠습니다요!”
객잔 주인이 눈을 질끈 감고 대답했다. 저 눈빛만 봐도 곧 칼에 찔릴 것처럼 오금이 저려, 주인은 설양이 뒤로 한 발짝 물러나기만을 기다렸다가 불에 덴 사람처럼 후닥닥 안으로 뛰어들어가 문을 잠궈 버렸다.
설양은 송람이 떠난 길 쪽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당장이라도 쫓아가서 죽여버릴까?
그러나 곧 생각을 바꾸었다.
은혜를 원수로 갚고, 눈에 거슬린 것을 용서하지 않으며, 한 번 정한 사냥감을 집요하게 따라가 죽이는 살인마의 눈. 그런 살기를 가득 품고 있던 설양의 눈동자에서 별안간 불꽃이 훅 꺼졌다. 그는 평소와 똑같은, 속내를 알 수 없을 만큼 나른한 표정을 한 채 몸을 돌려, 자신의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아직은, 그럴 필요 없다.
가장 갖고 싶은 게 지금은 내 손 안에 있으니까.
_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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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GM LIST -
[ MAIN ]
[ 2ftt ]
[ 멍개 ]
[ 시레 ]
[ 하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