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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무더위가 살짝 자취를 감춘 늦은 오후. 설양은 바구니에 보양식 재료를 한가득 채워 의장으로 돌아왔다. 해가 저물긴 했어도 공기가 후끈하여 바구니를 들고 있는 손에는 땀이 흥건했다. 설양은 얼굴에 흐르는 땀방울을 연신 훔쳐내며 늦어버린 저녁을 위해 재빨리 부엌으로 들어갔다. 시장에서 사 온 닭을 꺼내놓고 손질을 하려고 칼을 드니, 어느새 기척을 느낀 것인지 부엌으로 효성진이 들어왔다.
"내가 도울 게 하나쯤은 있을 듯한데, 어떤가?"
이래 봬도 칼질은 꽤 한다네.
효성진의 말에 설양은 크게 웃었다. 그렇네, 우리 도장님 칼질 하나는 끝내주지. 설양은 가볍게 웃으며 자신의 눈앞에 놓인 닭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그래도 손질은 내가 할 테니까, 도장님은 와서 속 좀 채워줘."
슥슥- 칼로 배를 가르고 안의 내용물을 비워낸 설양은 어느새 하얀 속살을 빛내고 있는 닭을 흐르는 물에 한 번 씻기고서, 옆에 있는 효성진에게 건넸다.
"그릇에 속 채울 재료 담아놨으니까 알아서 잘할 수 있지?"
"음.. 이건 찹쌀이고, 이건 대추인가?"
"응. 그리고 그 옆에 마늘도 있으니까 빼먹지 말고."
설양의 말에 효성진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제 손에 들린 재료를 채워 넣는 효성진의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가 먹을 것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것 같아 조금 귀엽게 느껴졌다. 설양은 부엌 한쪽에 놓여있는 의자에 앉아 등받이에 얼굴을 기댄 채 효성진을 바라보았다. 얇은 천 너머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팔이 문득 얇게 느껴졌다.
'쯧.. 효성진이 저리 말랐던가, 누가 보면 못먹고 사는 줄 알겠네.'
설양은 속으로 혀를 차며 시선을 내려 효성진의 손가락으로 옮겨갔다. 어느새 속을 다 채웠는지 기다란 꼬지로 구멍이 벌어지지 않게 고정시키는 중이었다. 얇고 긴 손가락이 구멍의 크기를 가늠하며 조심스럽게 꼬지를 찔러넣는 게 참으로 야설스러우면서도 보기좋아 남몰래 구경을 하는 설양이었다.
마지막 닭까지 꼬지를 꽂아 완성한 효성진은 너무 열중했던 탓인지 자신의 뺨을 타고 흐르는 땀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설양은 의자에서 일어나 효성진의 옆으로 다가갔다. 자신의 오른손을 뻗어 어느새 턱 끝에 맺힌 땀방울을 훔치며 턱을, 뺨을 차례대로 부드럽게 쓸어올렸다. 설양의 손짓에 의미를 알아챈 효성진은 슬쩍 얼굴을 붉히며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다 했으니 이제 삶으면 될 듯한데..."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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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