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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쳐버린 사람들이 죄다 그쪽으로 가는 걸 봤대요.”
   “다 먹고 말해, 튀니까.”


 설양이 타박했다. 세 사람 사이에는 작은 탁자에 제법 푸짐하게 차린 조반이 있었다. 아침치고는 거했으나 어젯밤을 쫄쫄 굶게 된 것까지 더하면 넘치는 것도 아니었다. 전날 설양은 효성진보다 훨씬 앞서서 객잔으로 들어오자마자 이불을 펴고 돌아눕더니 나오지 않았다. 그게 쭉 마음에 들지 않았던 터라 아천이 핏대를 냈다.


   “너나 작작 먹어! 나 덕분에 이렇게 잘 먹는 줄이나 알아.”
   “……흥.”


 아천이 아무리 생색을 내더라도 설양은 뭐라 할 자격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 사람의 여비를 전부 합쳐도 이렇게 좋은 방과 식사는 빌릴 수 없을 게 뻔했다. 어제 해 지기 전 시장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하던 아천이 은근슬쩍 ‘백의도장과 그의 신비스러운 퇴마 능력’에 대해 흘리지 않았다면 누릴 수 없는 호사였다.
 

   “안 그래도 오늘 아침에 감사 인사를 전했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갚기는 뭘 갚아요! 도장님이 그 요괴 잡아 버리면 이 정도가 뭐야, 집 한 채라도 바쳐야죠.”
 

 효성진의 겸양에 아천이 너스레를 떨었다. 효성진이 건곤낭에 든 동전 갯수를 헤아리다 말고 대답했다.


   “걱정했는데 다행이네. 아낀 돈으로는 단약이나 천을 좀 살 수 있겠어.”
   “내가 갈게.”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설양이 벌떡 일어났다. 설양 쪽에 놓인 접시에 손을 뻗으며 아천이 불만을 표했다.


   “내가 가기로 했는데?”
   “장님이 가서 사기나 당하려고? 시끄러. 갔다온다.”
   “조심해서 다녀오게. 마을 사람들이 밤에 나오지 못하도록 단단히 단속해 두었으니, 구룡호에는     내일 다녀와도 괜찮네.”

 


 효성진이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설양은 더 듣지 않고 그의 손에서 돈주머니를 낚아채 휘적휘적 객잔을 빠져나왔다. 심부름은 핑계고 단순히 효성진과 단 둘이 남고 싶지 않았다. 어젯밤 그 일이 있고 나서 설양은 밤새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니까, 피 묻은 입술이 왜 자꾸 어른거리냐고. 변태냐?

눈 밑은 퀭한데 그 위에 검은 면사를 얹으니 설양의 몰골은 저승사자마냥 처참했다. 시장에 나가서 설양은 거의 말을 할 필요도 없었다. 단검을 꺼낼 필요는 더더욱 없었다. 그가 대충 물건을 고르고 나면 상점 주인은 거의 매대 밑에 몸을 웅크리고 숨어 있다가 확인도 하지 않고 주는 대로 값을 받았다.

 단 걸 좀 살까.

 필요한 것을 모두 사고도 몇 푼 남은 동전을 헤아려 보던 설양은 문득 발길을 멈췄다. 대낮의 시장 한복판은 변고가 일어난 뒤로 이전 같지는 않았으나 나름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러나 그 가운데로도 온통 검은 일색의 옷을 차려입은 키 큰 사내는 유달리 눈에 띄었다.


“말 좀 묻겠습니다.”


검을 가로로 멘 흑의의 도장이 상인에게 말을 묻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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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GM LIST -

[ MAIN ]

00:00 / 02:15

[ 2ftt ]

[ 멍개 ]

​[ 시레 ]

[ 하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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