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효성진은 못내 속상한 표정이었다. 설양은 어쩔 수 없었다고, (집 앞이라도) 기다린건 맞지 않냐고 우겼지만 그뿐이었다. 효성진은 저녁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화낼 줄 모르는 이가 최선을 다해서 화를 내려고 하니 그랬다. 설양은 저녁 내내 빈정거렸다가 살랑거렸다가 하며 효성진의 기분을 풀어보려 했으나 무용했다. 그래도 효성진이라, 진심어린 사과 몇마디면 풀렸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무리 너그럽게 봐줘도 설양이 잘하는건 아니었다. 불확실한 정답 대신, 설양은 자신 있는 편법을 골랐다.
“—하여튼 인어들은 싹 다 고집쟁이라니까.”
“그대는 다른 인어를 만난 적도 없잖아. 그렇게 말하면 안돼.”
낚이라고 던진 시비에 효성진이 그대로 딸려 올라왔다. 설양이 씩 웃었다. 효성진이 그 자신만만한 비웃음에 울컥했는지 조용히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효성진이 이대로 설양을 무시할 수 있었다면 애초에 인어가 물을 떠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꼭 만나야 알아? 사람들 얘기를 들으면 알지.”
“…또 누가 만났는데? 그대도 아는 사람인가?”
“당연히 알지.”
당연히 모른다.
“그 인어도 땅 위로 올라와서 돌아갈 생각을 안 했지, 딱 너처럼. 바다에서 친구들이 걜
데리러와도 못 간다고 버텼다지. 그러면서도 물이 그리워서 바닷가 근처를 산책하는걸 좋아했 대.”
효성진은 이제 설양과 말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싹 잊었다. 효성진은 만약 자침이나 아천이 그를 찾아와서 그만 돌아가자고 한다면 과연 거절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아주, 아주 어려울 것 같았다. 효성진은 얼굴도 모르는, 설양의 아는 사람이 알았다는 인어가 가엾게 여겨졌다.
“왜 돌아가지 않았대?”
“왜겠어? 땅 위에 떠날 수 없는 게 있으니까 그랬지. 아주 넓은 성과 좋은 말을 가진 부자를
만났거든.”
효성진은 영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부자를 왜 떠날 수 없는데?”
“돈이 많잖아.”
“그렇지만 그대, 사람들은 돈을 바다에서 주워온다고 했잖아. 바다에도 있는게 왜 필요했겠어? 그건 아닌 것 같아.”
내가 그랬나. 설양은 언젠가 효성진의 질문에 아무렇게나 대답하던 걸 약간 후회했다. 효성진은 먼저 땅에 올라왔던 인어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눈이 반짝거렸다. 여기서 이야기를 멋대로 끝냈다간 당장 밤새도록 질문을 받을 게 분명했다. 설양은 뱃사람들이 꼬마를 적당히 귀여워해서 귀찮아질 때쯤 둘러대는 말을 생각해냈다.
03
- BGM LIST -
[ MAIN ]
[ 2ftt ]
[ 멍개 ]
[ 시레 ]
[ 하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