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 도장님, 일어났네요?”
“그대인가?”
“응. 도장님도 더우면 와서 발 담가 봐요. 싫으면 앉아만 있고요. 어때요?”
‘그럼 앉아만 있어. 괜찮지?’
꿈에서 자신이 했던 말과 사내의 말이 겹쳐 들렸다. 효성진은 미소를 지으며 아천을 데리고 사내에게 다가갔다. 몇 마디 장난을 주고받는 둘을 중재하며 작게 웃음까지 터뜨렸다. 꼭 지나온 마을에서 들었던 남매의 다툼 같았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왼쪽에는 그가 오른쪽에는 아천이 자리했다. 신을 벗어 가지런히 두고 내의를 접어 올렸다. 아천은 갈아입을 옷이 없다는 생각도 않고 냅다 발부터 담그려는 소리를 듣고는 손을 뻗어 붙잡았다. 그대로 자리에 세워두고 한쪽 무릎을 꿇어앉아 아천의 살짝 젖은 하얀 바지 끝단을 접어 올려주었다. 아천의 수줍은 웃음이 퍼졌다. 효성진은 그런 아천을 따라 웃었다. 그때 나도 접어달라고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효성진은 사내가 그냥 해본 소리임을 알았지만 아천은 속으로 경악했다. 그녀는 효성진의 옆으로 고개만 살짝 빼고 혀를 내밀었다.
“다 큰 사내가 징그럽게 뭘 접어달래? 직접 하시지!”
“뭐? 지금 내 이야기 하는 거야?”
“싸우지 말게. 화내면 더 덥지 않은가. 자, 아천. 이제 발 담가도 돼.”
“고마워요, 도장님!”
개울가로 가는 아천의 경쾌한 발소리가 들렸다. 찰박이는 소리 사이로 흥, 하고 코웃음을 치는 소리가 났다. 곧 보폭이 넓은 발걸음이 개울가로 향해 두 사람의 발장구 소리가 들려왔다. 물 안에 들어가서 놀 수는 없으니 결국 발로 물을 뿌리기 시작한 것 같았다. 효성진도 개울가 끝을 따라 발을 담그며 시원함을 느긋하게 즐겼다. 그렇게 걷다가 다시 물에서 나와 평평한 돌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따끈하게 달궈진 돌에 앉아서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후두두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물이 사방에 튀었다. 듣기엔 시원할 것 같았지만 갑자기 물이 튀어서 차갑기도 했을 것이다. 아천의 신나던 목소리가 금세 비명으로 바뀌었다. 사내에게 똑같이 물을 뿌리며 짜증을 내는 목소리와 장난이 통해서 신난 웃음소리가 섞였다. 효성진은 꽤 떨어진 곳에 앉아 있었는데도 물이 튀어 하얀 옷이 방울방울 젖었다. 효성진은 웃음을 터뜨리며 튀는 물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평화로웠다.
꿈에서 보았던 그때처럼.
그를 옆에 앉혀두고 다리를 계곡물에 담가 흔들거리며 웃었던 때가 절로 눈앞에 그려졌다. 효성진은 시선 너머의 풍경에 미소를 머금었다. 옆에 누군가가 다가와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는 것도 뒤늦게 깨달았을 정도로 그때를 추억하는 일에 빠져 있었다.
사내는 효성진의 옆에 앉아 무릎에 한 손을 올리고 턱을 괴었다. 그렇게 효성진의 잔잔한 미소를, 생각에 잠긴 얼굴을 눈에 담았다. 손을 뻗어 볼에 튄 물기를 닦아주려다 말고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몸을 기울여 그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뜯어봤다. 깨끗한 이마, 곧은 눈썹, 반듯하게 둘린 붕대, 하얀 피부에 자리한 연한 선홍빛 입술. 갸름한 턱선을 따라 내려가면 옷깃에 살짝 가려진 얇고 긴 목이 수려했다. 온통 새하얗던 효성진의 자태에 유일하게 색을 가진 입술이 눈에 띄었다. 입술에 다다른 시선은 떨어질 줄 몰랐다. 그는 고개를 기울여 당장이라도 효성진의 입술을 집어삼킬 것처럼 눈을 빛냈다. 이렇게 대놓고 얼쩡거리는데도 효성진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오똑한 코를 톡 치며 몸을 뒤로 물러 자세를 바로 했다.
05
- BGM LIST -
[ MAIN ]
[ 2ftt ]
[ 멍개 ]
[ 시레 ]
[ 하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