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촉하는 효성진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느새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워진 거리에 송자침은 고개를 확 뒤로 뺐다. 잠깐 사이에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 송자침은 말할 수 없었다. 하얀 피부, 흐트러진 긴 머리카락, 발개진 볼과…, 입술. 송자침은 그 모습에 순간 긴장했다.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를 일으켜준 뒤 자리에서 일어나 수풀 안쪽으로 넓고 빠른 보폭으로 걸어 들어갔다. 효성진은 갑작스러운 송자침의 행동에 멀어지는 뒷모습에다 대고 몇 번이나 이름을 불렀지만 이미 멀리 가버려서 뒤돌아보지 않았다. 무성한 수풀을 헤치며 더 안쪽으로 들어갈 뿐이었다.
“고맙다는 인사도 못 했는데 가버리면 어떡하나.”
그의 거침없는 손길에 흔들리는 수풀을 보며 효성진은 작게 중얼거렸다. 이미 닿지 못할 말이었지만 순식간에 조용해진 주위를 무언가로 메워야 할 것 같아 나온 말이었다. 그나저나 방금 일은, 무슨 의미였을까. 효성진은 떨리는 한 손을 겨우 들고 입을 막았다. 불러도 반응이 없는 그를 보는 순간 일렁이는 깊은 눈에 갇힌 것 같았다. 계곡물에 시원해지다 못해 차가워진 다리를 움츠리고 끌어안았다. 순식간에 더운 바람이 불어왔다. 효성진은 붉어진 얼굴을 식히려 젖은 내의에 고개를 묻었다. 빠르게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귓가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가라앉히려고 내쉰 숨이 가늘어지고 금방 떨려왔다. 열 오른 얼굴도 흐트러진 숨도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ㅡ
……!
…장님!
“도장님!”
다급한 말과는 다르게 조심스러운 손길에 효성진은 눈을 번쩍 떴다. 눈을 떴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가가 파르르 떨리며 통증이 밀려와 잠시 숨을 참았다. 금방 미소를 띤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몸가짐을 정돈했다. 고개를 돌리자 머뭇거리며 효성진을 기다린 소녀는 곧 입을 열었다.
“더워서 쓰러지신 줄 알았어요….”
“깜빡 잠들었네. 아천, 놀라게 해서 미안하구나.”
“어…, 그럼 이제 저랑 놀아주세요!”
“응…?”
가요. 어서요! 아천의 재촉에 못 이기듯 일어난 효성진은 조심히 걸음을 옮겼다. 효성진은 개울가가 나오자 쉬었다 가자는 아천의 조름을 단호히 거절할 수 없었다. 그녀가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그는 나무 아래 그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물가에서 노는 아천이 혹시라도 다치진 않는지 소리에 집중하다 그만 잠들어버린 모양이었다. 평소엔 꿈을 잘 꾸지 않았는데 하필이면 지금 꿈을 꾸다니. 효성진은 속으로 헛웃음을 삼켰다. 꿈이 너무 달콤했던 탓이었다. 효성진은 아천의 목소리에 꿈에서 벗어났다. 강렬한 햇살과 후덥지근한 바람을 맞으니 금방 정신이 들었다. 울퉁불퉁한 돌길에 걸음이 느려지자 효성진은 아천의 움직임에 더욱 신경을 썼다. 혹시라도 넘어지진 않을까 잡은 손에 힘을 주고 걸었다. 개울가에 다다르자 익숙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04
- BGM LIST -
[ MAIN ]
[ 2ftt ]
[ 멍개 ]
[ 시레 ]
[ 하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