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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벽. 설양은 고개를 들어 제 키보다 두 배쯤 높은 벽을 올려다보았다. 맑은 달밤에 걸린 종루의 그림자가 흔들림 없이 선명하기만 했다.

   “……지루해 죽겠다니까.”

 설양은 손 안에서 옥패를 굴리더니 급기야 몇 번 공중에 던졌다 받기까지 했다. 사위가 고요해 자신의 발소리마저 자박자박 등 뒤를 따라오는 것 같았다. 인기척이 사라진 비현실적인 풍경을 걷고 있노라니 마냥 꿈 같은데, 간간히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그를 일깨워 주었다.

 

 그러면서도 못내 스스로가 한심했다. 뭐 하자고 앞 못 보는 효성진 뒤나 졸졸 따라다니면서 체질에도 안 맞게 인심 좋은 척, 멀쩡한 척 연기나 하고 있는 거지?

 그냥 이대로 연기처럼 사라져 버릴까.

 그럼 효성진은 날 궁금해하려나?

 아니면 잠깐 스쳐지나간 이름모를 청년이 알아서 제 길 찾아갔겠거니 하며 잊어버릴까. 지금까지 옷깃을 맞댄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처럼…….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설양은 기묘하게도 효성진이 보고 싶었다.

지금 당장 무섭다고 말하면 달려와 주려나. 설양은 실없는 생각을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신호도 좀 정해 두는 건데. 뭐라고 하면 효성진이 달려올까? 여름밤이 춥다고? 쓸쓸하니 이유는 없지만 안아 달라고?

 죄다 의미없는 말들이었다. 아무 관계도 아닌 사람에게 기루에서나 주고받을 법한 농을 던지는 취미는 없었지만, 효성진에 한해 설양은 문득문득 이렇게 괴상스런 흥미가 돌았다.

 대신 설양은 아무렇게나 신호를 보냈다. 효성진은 한결같이 무탈함을 뜻하는 한 번의 신호로 답해 왔다. 뭔가를 발견하면 두 번 울리기로 약속해 놓은 신호는 이제 무의미해졌다. 설양은 몇 번씩이나 더 신호를 날렸다. 효성진은 당황한 것처럼 망설이면서도 매번 한 번을 울려 응답해 주었다. 뭐가 재미있는지 설양은 내내 킬킬거렸다.

   “……뭐야, 벌써 끝났어?”

 얼마 지나지 않아 법기는 더 이상 영력을 주입해도 아무 반응이 없게 되었다. 법력을 전부 소모한 모양이었다. 설양은 쓸모없게 된 옥패를 흔들어 보다 싫증 난 듯 아무데나 던져 버렸다.

 뭐 별일이야 있겠어. 효성진이야 한 바퀴 돌면 다시 만나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설양은 휘적휘적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몇 발짝 걷다 말고 설양이 문득 멈춰섰다.

 제법 둔탁한 걸 집어던졌는데, 왜 아무 소리도 안 나지?

 설양이 눈을 굴렸다. 그는 대놓고 몸을 돌리지 않으려고 조심하며 어깨 너머를 곁눈질했다. 바닥에는 제 발치에 굴러다녀야 할 옥패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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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GM LIST -

[ MAIN ]

00:00 / 02:15

[ 2ftt ]

[ 멍개 ]

​[ 시레 ]

[ 하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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